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돌싱남의 짝사랑 이야기(창작 소설)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돌싱남의 짝사랑 이야기
김민준 씨는 올해로 마흔두 살,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그의 인생은 몇 년 전 이혼이라는 꽤나 굵직한 터닝 포인트를 지나왔다. 다시 혼자가 된 후, 그는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유독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 그의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 건 바로 직장 동료, 이지혜 대리 때문이었다.
이지혜 대리는 민준 씨보다 네 살 많은 마흔여섯 살. 능숙한 업무 처리 능력과 항상 밝은 미소로 팀원들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민준 씨는 그런 그녀에게 은근히 끌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비친 지혜 대리는 마치 한 송이의 해바라기 같았다. 늘 자신을 빛나게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습이 그에게는 참 매력적이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술기운이 오른 민준 씨는 용기를 내어 지혜 대리에게 다가갔다.
"지혜 대리님, 혹시 주말에 시간 되세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지혜 대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민준 씨. 고맙긴 한데… 제가 이번 주말에는 선배랑 약속이 있어서요."
그녀의 말에 민준 씨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선배'라는 단어가 왜 그리도 날카롭게 그의 가슴을 파고드는지. 그녀의 관심 가는 남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확인 사살을 당하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민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지혜 대리를 향한 그의 마음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뒤였다. 그는 티 나지 않게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 애썼다. 그녀가 힘들어 보이면 따뜻한 커피를 건네고, 야근하는 날에는 몰래 야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혜 대리의 시선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가끔씩 그녀의 핸드폰 배경화면에 보이는 듬직한 남자의 뒷모습에 민준 씨는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래, 뭐 어때. 내가 꼭 그녀의 남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 거지.'
어느 날, 회사 탕비실에서 민준 씨는 지혜 대리의 통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선배, 저 다음 달에 이사 가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네? 정말요? 우와, 선배 최고!"
민준 씨의 귀에 '선배 최고!'라는 말이 또렷이 박혔다. 그는 가슴 한켠이 시큰거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지혜 대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혜 대리님, 다음 달에 이사 가신다면서요?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힘은 좀 씁니다!"
지혜 대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준 씨를 바라보았다.
"어머, 민준 씨! 어떻게 아셨어요? 괜찮아요, 선배가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민준 씨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뭐 알게 모르게 들었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급하게 필요할 수도 있고요. 저는 언제든 대기 중입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혜 대리의 시선에 짧은 순간이나마 자신에게 향한 호의를 읽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민준 씨는 굳이 쟁취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행복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싶었다. 언젠가 그녀의 미소 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자리하더라도, 그 미소가 영원히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
민준 씨는 오늘도 지혜 대리에게 작은 초콜릿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요, 민준 씨!"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행복이 피어난다. 사랑은 꼭 연인이 되어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지혜 대리를 통해 배워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