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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개그,공포,멜로소설 단편

벽 너머의 목소리 2 (옆집 여자 시점)

by qooo2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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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의 속삭임 (옆집 여자 시점)


낡은 아파트, 희미하게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 아래, 나는 낯선 고독 속에 갇혀 있었다. 서울의 봄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내게는 차갑고 불안한 계절이었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낯선 언어는 여전히 귀에 맴돌았고,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는 매번 나를 길 잃은 아이처럼 만들었다. 옆집의 존재는 희미한 발소리와 가끔씩 흘러나오는 슬픈 피아노 선율로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음악은 마치 내 고향의 흐린 하늘처럼, 늘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고된 번역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뻐근한 어깨를 벽에 기대었다. 그때였다. 벽 너머에서 아주 작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마치 누가 조심스럽게 노크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똑, 똑.” 섬뜩한 기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누가, 왜 벽을 두드리는 걸까?
그날 이후, 밤마다 벽 너머의 두드림은 불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음이라고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 규칙성은 점차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세 번 짧게, 한 번 길게. 마치 알파벳이나 숫자를 조합한 암호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날은 두 번 짧게, 두 번 길게. 마치 ‘괜찮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공포를 더욱 키웠다. 낯선 언어로 이루어진 벽 너머의 ‘대화’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처럼 나를 옥죄어 왔다.
밤이 깊어질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나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숨을 죽였다. 옆집 남자가 혹시 나를 엿듣고 있는 건 아닐까? 벽에 귀를 기울이면 그의 희미한 숨소리라도 들릴까 봐 두려웠다. 가끔씩 흘러나오는 슬픈 피아노곡은 그 불안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마치 내 외로움과 슬픔을 꿰뚫어 보고 조롱하는 듯했다.
어느 날, 피아노곡이 평소보다 더 처절하게 들리던 밤이었다. 갑자기 벽 너머에서 “똑” 하는 아주 약하고 떨리는 두드림이 느껴졌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 미약한 소리 속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 걸까? 고통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그는 나의 감정 상태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더욱 소름 끼쳤다. 혹시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서 벽 너머의 두드림은 더욱 잦아지고 그 패턴도 복잡해졌다. 짧고 빠른 두드림은 마치 초조함이나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 같았고, 느리고 잦은 두드림 속에서는 깊은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그가 점점 더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하려 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마치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듯했다.
겨울이 지나고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 왔지만, 내 마음속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도 벽 너머의 두드림이 완전히 멈췄다. 처음 며칠은 안도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갑작스러운 침묵은 더욱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마치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더 음흉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려는 건 아닐까?
매일 밤, 나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잠 못 이루었다.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고, 현관문의 잠금 장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낯선 공포로부터, 나를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학교 국제교류처 담당 교수님께 이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교수님은 나의 불안감을 이해해주셨고, 새로운 거처를 알아보는 것을 도와주셨다. 며칠 후, 학교 근처의 조용하고 안전한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이삿날 아침, 나는 짐을 싸서 낡은 아파트를 나섰다. 마지막으로 옆집의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 뒤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가 살고 있을 것이다. 서툰 두드림으로 시작된 벽 너머의 기묘한 ‘소통’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만을 남겼다. 나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동시에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부디, 그 벽 너머의 속삭임이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서울의 봄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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